Chapter 4

찾아갔습니다. 즉 이렇게 대우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처럼 중심을 보시는 주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께서 천한 죄인(세리)의 집을 찾아간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수군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날 밤 자기 집에 오신 주님에게,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즉 주님에게 그만한 재산을 헌금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자격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언제나 약하고 천한 자를 불러서 강하고 귀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의 강자는 예루살렘 성에 있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교권을 쥐고 성경에 밝아 은연중에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정작 그 주님이 나타나자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주님은 하도 어이가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예루살렘 성을 가리켜,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으리라.”(눅19:43-44)고 저주했습니다. 주님의 이 저주스러운 예언은 주 후 70년이 지나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화려한 예루살렘 성은 로마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혀 쑥밭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제자들은 자기 겉옷을 벗어 나귀 새끼 등에 얹고, 그 위에 예수를 태우고,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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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19:38) 하고 소리소리 외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일부 바리새인들은 주님에게 충고했습니다. “선생님, 저 제자들의 주책을 좀 책망 하셔야겠습니다.”

이들 바리새인은 주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선생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들에게 올바른 믿음이 싹틀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대답했습니다. “참견 말아라. 만일 저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입을 열어 대신 소리 지를 것이다.”(눅19:40)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기특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똑같이 주님을 따르면서도 믿음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이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적극성을 띠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열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한 가나안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개로 비유하고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겠다고 극성스럽게 애걸하여 소원을 풀었던 것입니다.(마15:27) 이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여간한 열성이 아닙니다.

신앙은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데서 자라게 됩니다. 아니,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정성을 다하게 마련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큰일도 소홀히 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걸려서 넘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신앙을 먼 데서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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