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문입니다. 마치 칼슘 혈관주사를 맞았을 때 화끈함을 느끼는 것과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의 피에 주의 피가 섞이는 격입니다. 이때 우리가 자극을 받는 것은 그 두 가지 피의 요소가 달라서 서로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나한테서 안찰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몹시 아프지만, 여러 번 안찰을 받으면 차츰 그 아픔이 가셔서 나중에는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만큼 피가 맑아진 연고입니다. 안찰이란 요컨대 더욱 큰 은혜를 받기 위한 일종의 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안찰을 받아 피가 정결케 된 후에는 스스로 더욱 큰 은혜의 다림줄을 잡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주의 피가 우리의 피와 연결되어 나도 아니고 주도 아닌 새로운 생명이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영의 세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 이와 같이 성령은 기독교의 생명이며, 따라서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를 헛 믿는 것이 됩니다.

이 말에는 반론이 제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서는 주를 주라고 할 자가 없다고 했으니, 주를 부르고 교회문을 드나들면 일단 성령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를 주라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해도 잡혀가 곤욕을 치러야 했던 주님 당시의 일이며, 따라서 오늘날 입으로는 주님을 부르면서 죄 짓기를 밥 먹듯 하는 자들까지도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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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을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7:21)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잘 밑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고 죄를 지으면 그만큼 피가 흐려집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더러운 피가 주의 깨끗한 피를 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은혜를 쏟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은혜를 받았다가는 쏟고, 쏟았다가는 다시 받는 것을 되풀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졌다 이겼다, 이겼다 졌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오래 간수하여 꾸준히 이겨 나가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성령을 받을 만한 마음의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성령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즉 성령이 오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장벽)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리케이드가 곧 죄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멀어질수록 성령은 강하게 임하며, 따라서 그 느낌도 커집니다.

사도 시대에 사도들을 비롯하여 여러 문도들이 불과 같은 성령을 받았을 때 이들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대담무쌍하게 되어, 자기 목숨을 내걸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긴자를 통하여 내리는 성령은 주로 물(이슬, 생수) 같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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