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는 육이 반, 신이 반, 즉 반신반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신이지만 사람이 볼 때에는 인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도 직통하고 인간과도 직통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형상을, 그것도 첫눈에 거룩하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의 형상을 입고 와야 합니다. 주께서 오신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왕이 민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왕자를 전국 방방곡곡에 파견하려면 호화찬란한 왕자의 복장을 일단 벗고 거지차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왕자는 지방에 내려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달게 받아야만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신분을 밝힌다면 왕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왕자는 아니꼽고 치사한 일도 참고 견디어 왕의 뜻을 이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한동안 사람의 행세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충실히 따라야 합니다. 만일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과 수모를 견디지 못해 권능을 행사하여, 땅 위에 후닥닥 뛰어내려 “이 놈들아, 이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

140 에덴의 메아리7권
Chapter 22

니냐!” 하고 불호령을 내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고스란히 어긴 것이 되어 그 피 권세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내려 보낼 수 없게 되며, 따라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은 실패하고 맙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됨으로써 최대의 헌신을 했습니다. 몸을 송두리째 바치는 것 이상의 헌신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연히 아픔을 견디고 창피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그 제사는 하나의 연극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그 모든 쓰라림을 겪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빼앗긴 인간을 도로 빼앗기 위해 극비리에 작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낸 것을 마귀도 처음에는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주께서 공적인 역사를 착수하기 위해 40일 기도를 시작하자 마귀는 주님을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던 것입니다. 만일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이 땅에 오신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일찌감치 손을 써서 처치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마귀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마련이었습니다. 즉 마귀가 그 영을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죽은 후에 그 영을 천국으로 데려갈 길을 마련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것

에덴의 메아리7권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