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서 그물을 던져도 잡히지 않는 고기를 대낮에 잡으라고 목수의 아들이 지시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그물이 찢어지게 잡혀 두 배를 고기로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주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불찰을 뉘우치고 두려운 나머지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아뢰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적에 대한 영적인 차원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베드로나 주위 사람들이 그때 주님을 곧 하나님의 아들로 맞아들여 순종했던들 주님은 구태여 이런 이적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권능을 눈으로 보지 않고 말씀만으로 목수의 아들을 대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놀라운 이적, 기사를 보여줘도 선지자와 혼동하여 사뭇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끝내는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육을 가진 인간이 영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이토록 벅찬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시하여 역대의 선지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영적인 영도자의 존재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런 점에서 전혀 애로를 느끼지 않은 것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위세가 당당한 그가 광야에서 외치자 사람들은 그 위세에 눌려 구세주가 아닌가 하고 수군거릴 정도였으므로, 자기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하나님의 종임을 입증해 보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