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

야말로 난사 중의 난사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파란과 우여곡절을 겪어도 결국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처음에 할례 폐지에 큰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2천 년에 걸쳐 수천만이 실시해 내려온 뿌리 깊은 전통을 어느 한 사람의 말에 따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만일 아브라함 이후 2천 년이 지나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다음 세대에서 어떤 종을 통하여 할례를 폐지하라고 지시했더라면 문제는 비교적 손쉽게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할례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과 할례를 폐지하라는 지시를 받은 그 종이 마주앉아 “아브라함 형, 당신에게는 할례를 실시하라는 지시가 왔지만, 나한테는 이제 이방인에게도 전도의 문을 열어야 하니 할례를 그만두라는 새로운 지시가 왔습니다.” 하고 말하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아브라함이 비교적 간단히 이것을 승복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직 전통과 관례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징표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율법이라고 해서 받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이 매우 어려워지게 마련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이며,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주님과 바울 사이에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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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

오늘날 우리의 안목으로 보면 후자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바울 당시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수가 그렇게 많아도 끝까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은 사람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당시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온 사람은 겨우 120명이었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대개 예수를 도깨비 내지 역적, 아니면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감람나무를 두고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우리가 감람나무의 ‘감’ 소리도 입 밖에 내기가 거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람나무를 증거해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세운 종이요, 여러분은 그 그늘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감람나무를 증거하는 것은 바울이 할례 폐지를 주장하는 일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가면 그만이지, 그밖에 어떤 특정인을 거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2천 년 동안 굳어버린 고정관념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터운 고정관념의 벽을 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믿기만 하면 된다는 바울의 신학 체계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왔으며, 오늘날 수억의 신도들이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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