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주실 뿐입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점점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판국에 무슨 낯으로 감람나무를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우리는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만일 그 뒤를 이어 새로 씻어 세우는 우리의 역사가 따르지 않았던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실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매사에 실로 용의주도하시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일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욱 굳게 뭉쳐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욱 분발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당신의 큰일을 빈틈없이 수행하기 위해 일꾼을 짝지어 내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마땅히 훌륭한 한 쌍이 되어야 할 터인데, 거의가 그렇지 못하여 암투와 갈등을 일삼아 왔습니다. 예컨대 사울과 다윗,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가 그렇고, 심지어 세례 요한과 주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두 감람나무 역시 문자 그대로 앙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언제나 전자가 후자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잠시 베드로와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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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고사를 회상해 보면서 오늘날 두 감람나무의 사이를 재검토하려고 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갈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두 종은 똑같은 하나님의 불과 같은 성령을 받은 사도였으나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바 사명이 다르고, 따라서 가르침이 달랐기 때문에 한동안 심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치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써서 외국 사람이 일체 범접을 못하게 한 것처럼,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여 이방인이 은혜 받는 길을 막았으나, 바울은 주의 지시에 따라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폐지시키는 데 앞장서고 이방인의 전도에 주력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이들을 따르는 많은 신도들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손가락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새로운 지시를 받아 움직일 때에는 베드로가 하던 일은 필요 없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흡수되어야 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입니다.

한편, 바울은 바울대로 베드로를 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주장대로 모세의 율법이 버젓이 행세하는 한 주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먹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베드로를 친 것은 더 좋은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나타나지 않았던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모세 율법을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지켜, 남자는 누구나 할례를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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