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은 거의 다 베드로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슬하에 있을 때에는 그 가르침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바울의 설교를 듣고 보니 귀가 번쩍 트였던 것입니다. 그 설교는 한결 차원이 높고 깊이가 있어, 이들은 그제야 바울을 따르기를 잘했다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감람나무 역사도 이와 비슷합니다. 성경에 명시한 대로, 두 감람나무는 똑같이 하나님이 세운,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자”(슥4:14)로서 ‘금 기름’이 흘러내려(슥4:12) 따르는 성도들에게 세 증거(불, 이슬, 생수)의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는 종이지만, 양자 사이에 이른바 ‘교제의 악수’가 이루어질 가망은 거의 없이 심한 반목을 일삼는 것은 각각 주장과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전자는 성경에서 떠나 무슨 조건을 내걸고 감람나무는 하나라고 우기는 반면에 후자는 성경 말씀 그대로 감람나무는 둘이라고 주장하며, 전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씨를 뿌리는 것이고 후자의 사명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자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여 그 슬하에 많은 사람들을 인도해 들이면 일단 할 일을 다 하게 되며, 그 뒤를 이어 후자는 말씀으로 감람나무의 체계를 확고히 세우고(계2:17) ‘이한 낫’을 휘둘러 알곡을 거두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계14:16)
성경에 감람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이긴자를 단수로 기록한 것은 세대를 이어 한 사람씩 역사하기 때문이며, 감람나무 자체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