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

한 감사 예배이기도 한 것입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60배, 혹 30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13:3-8)

이것은 누구나 아는 말씀이지만, 그 깊은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육적으로 해석하면 거의 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의 말과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인생의 추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에게 큰 경종이 됩니다.

농사를 지을 때에는 씨를 뿌리는 사람과 곡식을 거두는 사람이 같은 농부지만, 인생의 추수, 곧 영적인 수확은 성경 상 씨를 뿌리는 자와 알곡을 거두는 자가 각각 다릅니다. 두 감람나무의 사명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뿌리는 역할을 하고 후자는 거두는 역할을 합니다. 뿌리는 역사에서는 아무데나 일단 마구 뿌려놓지만, 거두는 역사에서는 알곡만 골라서 거둬들입니다. 이때 거두는 도구를 성경에서는 ‘낫’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계14:17) 뿌리는 역사에서는 이 낫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낫을 든 자가 단수(單數)로

216 에덴의 메아리7권
Chapter 34

표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전에 이상 중에 밤나무 밭에 가서, 익어서 땅에 떨어진 밤을 광주리에 골라 담은 이야기를 여러분께 한 적이 있습니다. 광주리에 담으려면 밤이 익어야 합니다. 즉 익지 않은 밤은 광주리에 담을 수 없습니다. 설사 내 맘대로 광주리에 주워 담아 천국 곳간에 들여놓으려고 해도 하늘에서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의 가장 큰 고충이 여기 있습니다. 한 솥 밥을 먹으면서 같이 고생했는데, 누구는 주 앞에 서고, 누구는 못 선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이런 일은 없어야 하며, 또 없도록 피차에 힘써야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을 나무로 비유하여 신앙의 척도를 말씀드리자면, 어떤 나무는 덩치는 큰데 열매가 달리지 않고, 어떤 나무는 아주 작지만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 있고, 또 어떤 나무는 가시밭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어떤 나무는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어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나무들을 모두 잘 가꾸어 좋은 열매를 맺게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이며, 그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이런 말은 물론 우리의 섭리 안에 부름을 받은 여러분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실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뿌리는 역사와 거두는 역사는 당연히 긴밀한 함수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인 하나님의 두 종 가운데 전자는 조만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양자 사이는 원만치 못할 정도가 아니라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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