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

에 가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느냐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하기는 이들의 입에서 ‘천국’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영의 세계에 어느 정도 눈을 떴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등장한 역대 선지자들은 영의 세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오는 육적인 혜택을 중요시하고 사후의 문제는 거의 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논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선지자 자신이 영의 세계를 잘 알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 사람들의 신앙 자세는 거의 육적인 것에 국한되어 생시에 벌을 받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공경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과 부활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논란을 거듭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즉 바리새파는 영혼과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고, 사두개파는 없다고 맞섰던 것입니다.

따라서 똑같이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측과 그렇지 않고 영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확신은 갖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양 파의 주장을 모두 벙어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즉 주님이 나타나자 비로소 육적인 가르침에서 영적인 가르침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주님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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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

천국과 새 생명에 관해 윤곽을 가르치자 사람들은 차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영의 세계를 조금씩 터뜨리는 교수법은 매우 교묘했습니다. 즉 주님은 천국에 대해 직접 가르치지 않고 비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무엇과 같다는 식으로 변죽을 울리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직접 가르쳐야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작 이사야의 입을 통해 비유로 가르칠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예컨대 유식한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주님을 찾아왔을 때에는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했습니다.(요3:3)

아무튼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에 대해 배우고 어느 정도 윤곽이나마 짐작이 갔기 때문에 당치 않은 질문이라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면 이런 질문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서도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대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하고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에 쐐기를 박은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의도를 모르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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