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2

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의 선량한 행동을 신성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지, 하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도 하나님과 선이 닿아 있지 않을 때 그것은 개인적인 가치에 그칩니다. 문제는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돈독했기 때문에 당신의 종으로 삼은 것이지,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쓸 만한 그릇이라고 인정될 때 하나님께서 부르는 것입니다.

선행이나 공로보다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의 여부를 하나님은 먼저 염두에 두십니다. 그러기에 수십 년 열심히 매달려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고, 별로 매달리는 것 같지 않는데 큰 축복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인이 우러러보아도 주님의 눈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주야로 울부짖으며 열심히 기도하는 자세도 귀하지만, 구하기 전에 주시도록 하는 신앙 자세가 소중한 것입니다. 아무리 호소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하나마나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오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오게끔 우리는 주님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갖춰야 할 첫째 요건입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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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

충분한 요건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충분한 요건을 갖출 수 있을까요? 신도 100만이 모여 철야해가면서 기도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되어야 하며, 또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해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성령 받기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럼 성령을 받을 만한 여건은 어떻게 해야 조성할 수 있을까요? 성령은 하늘의 것이지 땅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땅에 성령을 내려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여건도 인간이 마음대로 조성할 수 없습니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하나님의 인휼함을 입을 수 있는 시대이며,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특별한 은총을 내려 주시고 불꽃같이 살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 안에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2천 년 전에 흘리신 주의 피가 생수로 화하여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즉 안찰에 의해 쉽사리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생수에 의해 심령이 정결해질 수 있고, 기도에 의해 은혜의 연결을 쉽사리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애써서 되는 일이 아니고, 때를 잘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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