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다윗이 고향의 우물물이 생각나 주위 부하들을 돌아보면서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좀 길어다 줄 수 없을까?” 하고 혼자 말처럼 한 마디 던졌습니다.(삼하23:15) 블레셋군은 날카로운 무기를 가진 이스라엘의 오랜 숙적으로 베들레헴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세 용사가 선뜻 나서서 블레셋의 감시병과 싸워서 무찌르고 베들레헴 성문 옆의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임금이 마실 물 한 모금을 떠오기 위해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갸륵한 충성을 가상히 여겨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하나님께 드리고 “생명을 돌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라고 아뢰었습니다.(삼하23:17) 실로 그 임금에 그 신하라고 하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밑에 이런 신하를 거느렸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독불장군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에서도 들어맞습니다. 만일 모세가 다윗의 입장에 있고, 다윗이 모세의 입장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양상이 크게 달라져 모세는 성공의 종이 되고, 다윗은 실패의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종과 백성은 이처럼 긴밀한 함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입은 자를 영접하는 것은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였습니다.(요13:20) 보내심을 입은 자를 무시하고 보낸 자의 기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