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래서 그 뒤를 이어 수보하는 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앞선 역사를 큰 회사로 친다면 이 역사는 아직 노점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경영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큰 회사를 경영하는 방법으로 노점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는 손님을 상대로 “이것 하나 팔아 줍쇼.” 하고 매달리는 것이 노점상입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얌전히 매고 목에 힘을 주고 도장이나 빵빵 찍는 사업과는 판이합니다. 잠바 차림으로 물건 하나하나를 오가는 손님에게 팔아야 합니다. 그러니 시키는 자나 그 지시를 따르는 자나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감추었던 만나를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만큼이라도 이뤄 놓은 것입니다. 만일 오순절에 내린 불과 같은 성령이 감추었던 만나라면 구태여 이긴자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감추었던 만나와 불과 같은 성령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긴자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계2:17)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흰 돌’은 ‘한 돌에 일곱 눈이 박혔다.’는 그 돌입니다.(슥3:9, 계5:6) 그러므로 이 흰 돌을 받는 자는 일곱 눈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계5:6) 즉 보혜사 성령이며, 이 보혜사가 평생에 지은 죄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와 유전죄까지 하루에 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 마련되면 마귀에게는 대단히 불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