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고자 하는 역사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지, 인간의 생각으로 가타부타 논해서는 안 됩니다. 또 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유를 대고 말이 많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사에 응답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사이는 ‘너는 너, 나는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등 뒤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인데도 살인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가로막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왜 여러분에게 체계를 강조하는지 아십니까? 오늘날 이 땅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인 차원에서 깨닫고 따르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여 시험에 드는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 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계14:4) 감람나무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주님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을 가지들에게 알리면 좋든 싫든, 즐거우나 괴로우나, 거기 적응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거역하면 영이 죽습니다. 그것이 내 개인의 일이라면 죽고 사는 문제가 제기될 수 없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것을 거역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