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하시고자 하는 역사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지, 인간의 생각으로 가타부타 논해서는 안 됩니다. 또 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유를 대고 말이 많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사에 응답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사이는 ‘너는 너, 나는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등 뒤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인데도 살인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가로막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왜 여러분에게 체계를 강조하는지 아십니까? 오늘날 이 땅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영적인 차원에서 깨닫고 따르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여 시험에 드는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 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계14:4) 감람나무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주님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을 가지들에게 알리면 좋든 싫든, 즐거우나 괴로우나, 거기 적응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거역하면 영이 죽습니다. 그것이 내 개인의 일이라면 죽고 사는 문제가 제기될 수 없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것을 거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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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교회에서는 감람나무의 역사를 이단으로 봅니다. 여기에는 물론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의 생각에는 정당합니다. 그러나 감람나무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그들의 판단에 일리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옳게 보시지 않습니다. 왜? 당신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선도 행할 수 있고, 악도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감람나무의 역사 자체부터가 얼마나 인간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 쉽사리 납득이 가는 것이 감람나무의 역사라면 기성교회가 깨닫고 호응할 겁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감람나무의 역사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이라야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앞선 감람나무의 역사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렇게 비참하게 무너져 가는 판인데,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간의 생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이끌어 가는 주의 종은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하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주의 종의 말을 거역하면서 주님께 잘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큰 오산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그 종의 지시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지시를 거역하면 주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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