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

말씀이 그것입니다.

권위 있고, 학식 있고, 돈 있는 사람들만 복 받는 줄 알던 일반 이스라엘 서민들은 이런 새로운 말씀을 듣고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민이나 어부와 같은 하류층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크게 고무된 반면에, 당시에 평화롭게 잘사는 권력층과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처음부터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갔을 때, 주님은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서서히 터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즉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6:54) 하고 당시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 마지막 날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보다 차원 높은 이 영적인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옆으로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심지어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이해하지 못하여 수군거렸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보시고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하고 반문하시고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그러니까 지금 주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어디까지나 영을 살리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앙생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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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시일에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육을 입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을 위해 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수는 물론 영에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기독교가 양적으로는 크게 발전하여 우리나라만 해도 기독교 신도의 수가 천만을 넘습니다. 이것은 같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한 단계 깊이 들어가 영적인 문제를 고찰해 보면 큰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오늘날 그들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신앙을 올바로 키워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여러분은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주의 따뜻한 손길이 음으로 양으로 여러분을 인도하고 있지만, 그것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 신앙이 미약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귀한 것을 멀리하고, 썩어 없어질 육의 것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많은 시련과 연단을 거쳐야 합니다.

인간의 약점은 악을 좋아하고, 선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도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자기를 가리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 하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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