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글자 그대로 진리였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를 영적으로 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위대한 권력가나 훌륭한 학자가 한 말은 오늘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어떤 육적인 힘이 아니라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관상 세상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도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밖에 되지 않습니다. 방안을 조화(造花)로 아무리 그럴듯하게 잘 꾸며 놓아도 거기서는 향기가 풍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송이의 백합꽃을 그 방에 갖다 놓아두면 향기로 가득 차게 됩니다.
종교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사는 양적으로는 보잘것없지만, 질적으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역사에 많은 기대를 갖고 계신 것은 그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양적으로 양떼들을 크게 부흥시킨 목회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적인 신앙인에게 혁신적인 신앙 운동은 거부감부터 안겨 줍니다.
계시록에는 일곱 인, 일곱 영, 일곱 눈 등, 일곱이라는 수가 많이 나오고, 또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계13:18)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 일곱과 여섯은 각각 하나님과 마귀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을 7수로 표시하고 마귀를 6수로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