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부흥 운동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적인 차원의 체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체계가 서야 주의 종의 가르침을 귀담아듣고 거기 순응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다른 보혜사 성령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는 성서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게 안 되면 성경은 하나의 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생수의 성령은 오늘날 이긴자를 통하여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 이긴자를 제대로 알고 따르려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이긴자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납득했다고 해서 순교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순교할 수 있는 성령의 감동이 함께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오니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파 죽겠는데 이론적으로 그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론을 앞세우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면 그때까지 막혔던 것이 터지면서 귀가 열려, 내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감동을 느끼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만 옳은 줄 알고 자꾸만 따지게 되면, 모든 것이 마음에 부딪혀 신앙이 뒷걸음질을 쳐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