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고난 받으신 대가로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데 왜 하필이면 독생자에게 최고의 극형을 내리셔야 하는가? 아무도 2천 년 동안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을 고맙게 여깁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싶어서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 지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 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너는 죽어야 해. 네가 죽지 않으면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 이것입니다. 그럼 대관절 하나님의 뜻이 뭔데,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26:39) 주님은 “제가 죽어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신다면 제가 죽겠습니다.” 하고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너무나 괴로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당신에 대한 예언의 시구를 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부르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산 제물이 되기 위해 잠깐 동안 천사들보다 못한 존재,(히2:9) 곧 인간의 위치로 내려와 버림을 받으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