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 하면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의 세계에 대하여 까막눈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내세워 당신의 백성을 배출시켜 집중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도전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선지자, 사사, 왕들을 통하여 역사해 오셨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도전하는 악의 세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력이 인류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괴롭히므로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 이후로 빼앗긴 인류를 다시 빼앗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동안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신 끝에 끝내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신 것입니다. 만에 하나 이 최후의 수단이 실패하는 날에는 큰일 납니다. 그래서 마귀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고전2:7)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빚을 얻고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자기 마누라를 팔거나 자기 자식을 희생시켜 사업을 일으켰다고 칩시다. 얼마나 다급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가장 귀한 존재는 우주를 지으실 때 동참했던 아들입니다.(창1:26) 그 가장 귀한 아들을 극형에 처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