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에 마귀만 이득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시대에는 전술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아버지여, 엘리야 때처럼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하소서.” 하고 기도하여 그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여 버렸다면, 주님은 살아나 의기양양하게 능력을 과시할 수 있지만, 이건 성공이 아니라 실패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앞선 역사에 부름을 받은 9만 명의 감람나무의 가지들을 마귀의 손에 다 빼앗겼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장악한 것입니다. 이걸 저더러 무기를 줄 테니 하나하나 빼앗으라고 하신 겁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을 대하기 전에 하나님이 저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제가 하는 일에 얼마나 말이 많습니까? 무슨 역할을 하는 종인 걸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그러면 영생합니다.” 하고 전도하는 일반교회의 목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피를 받은 것들이 나를 모독해. 다 내게 원수가 됐어.” 앞선 역사가 겉으로 멀쩡할 때, 주님은 앞을 내다보시고 이렇게 개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하고만 교류할 때에는 마음대로 하십니다. 즉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 마귀가 끼어들어 3각 관계를 이루게 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인간이 마귀에게 쏠리면 그만큼 하나님이 불리해지고, 하나님께 쏠리면 그만큼 마귀에게 불리해집니다. 이 관계는 마치 저울과 같습니다. 저울은 한쪽이 조금만 더 무거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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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그리로 기울어집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대결할 때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을 돕느냐, 마귀를 돕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인간이 마귀를 도우면 하나님께 크게 불리해지고, 반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도우면 마귀에게 크게 불리해집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과 마귀는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금 하나님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저입니다.

이런 사명을 띤 사람과 일반교회에서 복음이나 전하는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기 위해서는 당신의 독생자도 찢어 죽이는 기막힌 일도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어떤 처지에 놓여 계신지 알 수 있잖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코너에 몰려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큰 괴로움을 겪고 계신 하나님의 처지를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쫓겨났지만 멸망한 건 아닙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밤낮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기 와서 기도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간에 가로막는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앞선 역사가 무너져 나갈 때 하나님과 주님이 얼마나 당황하신 줄 아십니까? 저에게 그 내막을 가르쳐 주시고도 때가 되기 전에는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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