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

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3:24)

이와 같이 인간은 중간에서 하나님의 편도 될 수 있고, 마귀의 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쪽으로 언제나 끌려다니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은 신의 역학 관계를 알게 되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만할 아무 건더기가 없습니다. 잘난 체해 봤자 자기 생애가 지나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지상의 사람들에게 존경받아도 죽으면 똑같습니다. 잘나고 못난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속에 들어가면 끝납니다.

문제는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부리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공부 많이 했다고 해서 명성을 날리고, 돈 많이 벌었다고 해서 떵떵거리고 ―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쓰시느냐에 따라 그 흔적이 남을 뿐입니다.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것은 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 변화가 뭐냐? 하나님의 세력에게 도전하는 세력이 아담, 하와에게 침투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 짓기 전의 아담, 하와처럼 다시 하나님만 알게 하려는 작업을 하려면 그 도전하는 세력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물리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때 인간 속에는 두 세력이 인간을 놓고 지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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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을 확보하기 위해 다투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쩔 수 없이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운명입니다. ‘나는 지배받지 않는다.’ ― 이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요3:16-19)

여기서 빛과 어둠의 차이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이 나타날 때까지(마11:13)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세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례 요한 때까지 선으로 인정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율법에 따라 제사를 지내면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들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당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 문제가 생겼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났을 때부터였습니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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