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합니다. 즉 서로 인간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럴 경우는 먼저 지배하는 쪽이 유리합니다. 성경에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생명체가 어머니 뱃속에서 형성될 때부터 성령이 지배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지배하는 경우가 아니면 자동적으로 악령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은 악령의 지배를 받고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요8:44) 이 악령이 지배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들어가려고 할 때, 악령이 순순히 자리를 내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과 영끼리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때 인간은 성령과 악령의 전쟁터가 됩니다.

한 영이 들어가 다른 영을 쫓아내려면 그럴만한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비어 있는 자리에 들어가 차지한다면 마찰이 생길 리가 없지만, 이미 차지한 세력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점령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는 이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앞선 역사에서 주의 은혜를 받은 자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 어둠에 점령된 후에 그 점령한 영을 밀어내고 주님의 영을 다시 주입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육적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때 상대방에게 들어가 있는 악령을 쫓아내고 성령이 차지해야 성령이 그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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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오늘날 감람나무 시대에는 십자가 아래서 찬송 부르고 성경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일반교회에서 하는 이야기고,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은 빼앗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둠의 지배를 받게 된 앞선 역사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뺏느냐 마느냐 하는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빼앗으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 거고, 빼앗지 못하면 어둠이 지배하는 그대로 끝나 버립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싸움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차원의 갈등이 아닙니다. 신과 신끼리의 문제다 이겁니다.

이것을 육안으로 봐서 납득이 가고 수긍이 가느냐 ― 그렇지 못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뺏고 뺏기는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전쟁은 이기고 봐야 합니다. 지상에서 하는 전쟁도 패장(敗將)은 유구무언(有口無言), 즉 입은 있으되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영원한 생사를 판가름하는 영의 전쟁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안찰이 뭐냐? 사람에게는 저마다 지배하는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을 지니고 주의 종에게로 나옵니다. 이때 주의 종이 안찰하면 하나님의 신이 쉽사리 그에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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