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23.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니’

주님이 이 땅에서 30년 동안 사생활을 하시다가 3년 동안의 공생활을 하실 때에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또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따랐으나, 아버지께로 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실 때에 사랑하는 제자들까지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그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요14:2-4)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즉 하늘나라는 아무리 넓어도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갈 수 없고, 따라서 거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은 평생토록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이 떠난다고 말씀하시니, 가시면 어디로 가실 것이며, 또 지금까지 따라온 우리는 어떻게 되나, 하여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내가 바로 길이다. 그러므로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내 아버지의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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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아무도 가지 못한다.”(요14:6) 그러나 이 말씀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던졌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떠나는 것이 사실은 유익하니라.”(요16:7) 즉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께로 가시면 다른 보혜사 성령이 임하게 되어 훨씬 유리한 여건이 조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셔서 예비하게 된다는 처소가 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주님보다 이 땅에 먼저 온 선지자들이나 또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던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겁니까? 갈 수도 없거니와, 가 봤자 거할 곳이 없습니다. 왜? 처소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아무나 가서 적당히 사는 곳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주님이 “내가 길이니 나를 통해야 한다.” 하시고, “너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지 않으면,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지금까지 구약 시대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이사야 등과 같은 선지자들이 죽어서 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제가 밝히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실 일이 뭔가? 앞에서도 지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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