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5. 하나님의 섭리와 감람나무 시대

우리는 오늘날 성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스리는 섭리를 차근차근 깊이 깨달아, 종래의 신앙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시정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깊이 모를 때에는 별로 걱정하거나 고민할 것도 없지만, 그 내막을 상세히 알게 되면 결코 태연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니엘서의 주인공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이상을 보고 고민하다가 기절하여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습니다.(단8:27) 영적으로 낮은 차원에서 신앙을 지킬 때에는 이런 일이 없지만, 영적으로 깊은 단계에 이르면 남들이 알지 못하는 영의 문제로 고민하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하늘나라(셋째 하늘)에 갔다 온 경험을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후12:2)고 간증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광경을 보았던 것입니다.

주의 종도 하나님의 깊은 섭리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기뻐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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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앞서, 깊은 시름과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앞선 역사는 기독교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나, 엄청난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왜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신과 신의 관계를 깊이 알지 못하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앞선 역사가 요원의 불길같이 일어났다고 운운해 봤자, 그것은 전 세계 기독교계를 놓고 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런 가운데서 거기만 뭐가 있다 떠들어 대는 것은 일반 교계에는 가소로운 일로 보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휴거라 해서, 몇 안 되는 신도들이 흰옷 입고 모여 앉아 주님이 다시 오실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며 하늘을 우러러볼 때, 많은 신도들은 그들을 가소롭고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일들이 어디서 오느냐?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백만, 수천만이 덮어놓고 믿으면 된다는 것도 무지의 소치입니다. 그러나 기쁨은 느낄 수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유지됩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에 입각하여 부흥되고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상고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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